예전에 제가 남한산성 등반을 하면서 성밖의 세상과 성안의 세상을 비교하며 “울타리론”에 대해 설명을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성이 안에서 보면 자신을 지켜주는 든든한 울타리이지만 성 밖의 그 보다 훨씬 큰 세상에서 보면 아주 작은 것을 지켜주는 듯한 착각을 주는, 자신을 옭아매는 경계 같은 울타리가 되는 것이죠. 아니 직접 경계를 쌓아서 눈에 보이는 울타리가 있는 건 차라리 낳을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자신도 모르는, 어쩌면 울타리의 역할 조차도 모른 그런 울타리가 항상 문제가 됩니다.
남들이 느끼기에 아 저건 꽃 울타리구나, 아 저건 돌 울타리구나, 아 저건 가시울타리구나 등등 나와 남이 보이는 대로 말 할 수 있는 울타리는 얼마든지 자기 정체성이라는 단어로 포장이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나만의 울타리가 문제입니다. 이런 경우 상대와의 커뮤니케이션 단절은 말 할 수 도 없으며 우리라는 말에서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그 안에서 나와 더 큰 세상에 대한 소통이 필요합니다.
울타리와 같지는 않지만 요즘 이건희회장의 “샌드위치론”도 아주 많이 회자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 보다 대국인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중간에 낀 모습이 샌드위치 같다며 중국은 뒤에서 쫓아오고 일본은 더 격차를 벌이며 앞으로 도망하는 글로벌 경쟁시장의 모습을 샌드위치 신세로 우리를 표한 것이죠. 다 그 속내를 잘 아시다시피 우리 경제의 경쟁과 암울함을 표현한 것이죠, 여기에 한술 더 떠 일본 노무라종합연구소 오노 히사시 서울지점장은 "샌드위치 한국경제 진단과 해법" 세미나에서 한국경제 “4대 샌드위치”론까지 주장해 우리의 위기를 더욱 부추겼습니다.
오노 지점장은 현재 한국경제가 처한 4대 샌드위치 상황은 1) 기술장벽 샌드위치, 2)이익장벽 샌드위치, 3)시장지배 샌드위치, 4)첨단산업 샌드위치 등의 네 가지라고 합니다. 즉 한국의 자동차 및 부품소재 업체에 해당하는 기술장벽 샌드위치는 상위 기업의
기술력을 따라잡지 못하면서 하위 기업의 가격경쟁력에 추격당하는 상황을 일컫는 것이며 이익장벽 샌드위치는 한국의 평판디스플레이, 조선업 등은 시장지배력이 높지만 이익이 줄어드는 상황이고 시장지배 샌드위치는 막대한 투자로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지 않으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가장 자신있게 자랑하고 추진하고 IT, 소프트웨어, 서비스 산업 등도 축적된 지적 자산이나 브랜드 파워가 부족해 하청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첨단산업 샌드위치론이라는 주장입니다.
물론 다 우리를 위해 앞날을 걱정하며 대비하자는 낙관적 판단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이런 상황은 최근의 우리나라 상황에서뿐만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에게 이미 있어왔던 현상들로 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아마추어적인 생각을 해 봅니다. 넛크래커(nut-cracker) 현상이라고 우리는 이미 IMF를 겪으며 익히 들어왔고 경험한 이야기 입니다. 호두 같은 단단한 양 껍질 사이에 끼어서도 훌륭하게 그 단단함을 이겨냈는데 샌드위치 같은 소프트 한 양벽면이 뭐 그리 대수이겠습니까?
흔히들 하는 말로 “발상의 전환”이 있다면 위기는 위험도 되지만 기회도 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생각입니다. 울타리를 기준으로 안에서 본 생각과 밖에서 본 생각이 다르고 샌드위치나 호두의 속에서 생각하는 관점만 다르게 한다면 누가 주인공이고 누가 버려지는 지는 정 반대의 결과가 됩니다. 샌드위치를 샌드위치답게 하는 것, 호두를 호두답게 하는 것은 보여지는 커다란 껍질이 아니라 그 속에 숨어있는 작고 약한 “소”때문입니다.
“가격은 중국보다 높고 기술은 일본보다 낮다.”를 “가격은 일본보다 낮고 기술은 중국보다 높다”로 양면을 바꾸면 전혀 반대의 샌드위치론이 됩니다. 실제로도 그랬습니다. IMF 위기 때 그렇게 빨리 그렇게 지혜롭게 우리가 외환외기를 벗어날 것이라고 그 어느 전문가도 예상치 못한 일을 우리가 해 냈습니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주장이나 논리나 학설 그리고 새로운 시류는 다 깨지고 부정되라고 있다고 봅니다.
어느 조직이나 단체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상사라는 직위로 더 안다는 전문가로서의 주장이나 경험을 존중하고 따라주어야 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그 기본논리에 동조하고 따라가기 보다는 어느 카피처럼 모두 네라고 할 때 아니오라고 하는 사람이 바로 나였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늘 해 봅니다.
샌드위치론, 4대 샌드위치론 다 경험과 연륜이 많으신 능력있는 분들의 주장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맹목적인 동조와 뇌동은 그동안의 존재에 대한 비참한 부정일 뿐입니다. 발전적인 커뮤니케이션은 부정에서 시작된다고 봅니다. 지금까지의 주장이나 논리가
다 맞고 지금까지의 경험대로만 일이 진행된다면 그렇지만 그것은 보편타당성의 원리만을 말하는 것이지 눈감으면 바뀌는 지금의 세상에서는 보편타당성과 상황급변성, 진리변화성 등이 적절히 조화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미디어에 노출된 대로 눈에 보여지는 것에 대한 긍정적 수용이 기본이지만 정말 세상은 노출되어지지 않은 더 많은 세상이 있다고 인정하셔야 살 맛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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