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내부소통이 소통의 기본이라는 내용으로 말씀을 드렸더니 그럼 외부 소통은 어떻게 하는 것이냐?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외부소통이기도 하지만 올바른 소통, 잘하는 소통법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금은 좀 잠잠해졌지만 얼마전까지 언론에서는 이명박대통령과 박근혜 전총재의 소통에 대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 제목에 비유해 두 사람간의 차이를 극단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책에서 보여주는 내용은 남자와 여자간의 근본적인 사고와 언어는 당연히 다를 수 밖에 없어 각기 다른 행성에서 온 것처럼 의사 소통이 안된다는 논리입니다. 예를 들면 여자와 남자가 받고 싶은 것 6가지가 순서도 전혀 일치하지 않고 그 내용도 상호 다르다는 것입니다. 즉 여자대 남자의 경우1번이 관심-신뢰, 2번이 이해-인정, 3번이 존중-감사, 4번이 헌신-찬미, 5번이 공감-찬성, 6번이 확신-격려 순으로 다르게 나타난다고 합니다. 여자의 경우 약간 소극적인 단어들인 반면 남자들의 경우는 적극적인 의사 표현을 원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남자와 여자가 항상 그렇다는 뜻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서로 다른 것을 생각하고 말한다고 이해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처한 환경, 자리, 위치, 시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가치관(교육)에 따른 생각과 표현의 차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맞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언론에서 말한 이명박식 소통법과 박근혜식 소통법은 꼭 화성 남자, 금성 여자라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고 그 반대의 경우라고 전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상호간의 통역자가 필요하다고 할 정도로 말은 같은데 뜻이 다른 상황을 심각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같은 자리, 같은 시간, 같은 사람이 소통한 상황도 이 정도인데 만약 다른 자리, 다른 시간, 다른 상대였다면 그 격차는 더욱 심했을 겁니다. 시쳇말로 말만 들었지 진정한 뜻의 소통을 하려면 말하는 입은 한 개이고 듣는 귀는 두 개라는 진리를 바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 사이의 잘못된 소통은 결과적으론 상호에게 비수가 되어 날아오기도 하는 심각한 폭력이 되기도 합니다. 오죽하면 비폭력 대화법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이 비폭력 대화의 기본이 바로 올바른, 잘하는 소통법입니다. 세치 혀로 하는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상대의 입장에서 진심으로 이해하려는 가슴의 뜻을 보는 것입니다.
비폭력 대화(Non Violent Communication, NVC)는 미국 마셜 로젠버그 박사가 만든 개념으로 질적인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나의 욕구, 필요와 상대의 욕구, 필요가 동시에 만족되며 서로 즐거운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존재하는 어느 집단이나 조직, 사회 등에서 꼭 필요한 방법론입니다.
비폭력 대화의 네 가지 모델은 '관찰(observation) -> 느낌(feeling) –> 필요, 욕구(needs) –> 부탁(request)' 이라고 합니다. 상대가 하는 행동이나 말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그것을 기본으로 내 자신의 느낌을 가감없이 확인(상대의 동조)하고, 서로간 대화를 하게 된 필요와 욕구를 충족하고, 마지막으로 다른 생각은 같아지도록 부탁(요청)하는 것이 비폭력 대화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4가지 모델이 꼭 순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랍니다. 관찰하고 부탁할 수도 있으며 거꾸로 처음부터 필요와 욕구를 서로 이해하고 관찰해도 무방하다는 것입니다.
올바른 소통을 말할 때 가장 많이 예로 드는 것이 바로 모 그룹회장이 아들에게 말했던 ‘경청’이라는 단어입니다. 소통의 가장 기본이며 시작이 바로 경청입니다. 이 시작이 잘못되면 다음의 순서와 소통의 결과는 불 보듯 뻔합니다. 경청은 단순히 상대의 입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정성스럽게 상대에게 귀 기울여 속을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상대에 대한 성의를 보여주는 것이며 당연히 열린 마음으로 진심을 파악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상하, 좌우에 구분없이 정성스럽게 소통해야 하며 상하 관계의 의한 아부나 억압이 아닌지 파악해야 하며 좌우에 의한 생각의 편향이 없도록 소통이 끝나기 전에 확인하고 요청해야 합니다. 겉으로 들어나고 보이는 고개의 끄덕거림으로 나의 의견에 동의한다든지, 이해를 구했다고 지레 긍정적으로 판단한다든지, 또 눈을 맞추지 않고 듣는다고 거부하는 몸짓으로 판단한다든지 하는 것은 정성스러운 소통의 자세가 아닙니다. 열린 마음은 아무 조건없이 상대가 되어 들어주고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야 결과도 상생이 됩니다. 파괴나 폭력이 아니라 생산과 나눔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소통의 자세는 지금까지 말씀드린 모델들이 아니고(제가 보기에는 앞의 모델들은 모두 상대에 대한 모델, 청취자로서의 모델이고) 더욱 중요한 것은 나의 모델이라는 생각입니다. 즉 화자(話者), 의사전달자로서의 최고의 모델은 진솔하고 정확한 전달입니다. 화성 남자처럼 애둘러하는 표현은 스스로는 상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진솔하고 정확한 전달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금성 여자처럼 필요와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고 부탁(요구)을 정확하게 하지 못한 소통은 상호에게 불신과 대치라는 결과를 가져왔음을 우리는 이미 보았습니다.
결론적으로 잘하는 소통법은 스스로에게 진솔하고 정확한 자세로 상대를 제대로 경청하려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진솔하고 정확하게 소통을 하지 못하는 데 어떻게 상대에게 말을 못하고 뜻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탓 할 수가 있겠습니까? 때로는 소통할 때 동양적 예의범절이나 정의 소통법보다는 서양적 합리주의나 과학주의 소통법이 더 낳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지위고하나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로 짜증나리만큼 확인하고 서명을 강조하는 문화가 필요할 때가 많다는 생각입니다.